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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2. 22世 〉74. <부정공>매헌공휘충재묘갈명(梅軒公諱忠材墓碣銘)
1. 문헌 목록 〉22. 22世 〉76. <광양공>죽재공휘상록효열장발문(竹齋公諱相祿孝烈狀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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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광양공>상록배정부인김해김씨묘갈명(相祿配貞夫人金海金氏墓碣銘)
(광양공후)22世상록(相祿)配 정부인김해김씨묘갈명(貞夫人金海金氏墓碣銘) 호남 곡성에 사는 조동혁(趙東爀) 군은 언행이 단정한 훌륭한 집안의 후손인데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 내보이면서 나에게 말하기를, 「이는 우리 어머니의 훌륭한 행실인데 무덤 앞에 심은 나무의 둘레가 한 뼘이나 되게 자라도록 아직 비석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제 평소의 소원이니 원하옵건대 한 말씀 써 주어 자손들이 보게 해 주신다면 그 은혜가 더없이 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그의 조상을 기리려는 정성에 감동하여 그 행장을 보니, 김 씨는 김해(金海)의 세가(世家)로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인 김성대(金聖大)의 따님이요 홍문관 제학 조상록(趙相祿)의 배위이다. 조상록의 세계는 부원군(府院君) 휘 원길(元吉), 판관(判官) 휘 암(巖), 처사(處士) 휘 득명(得命), 사복시 정 휘 자옥(自玉), 증(赠) 승지(承旨) 휘 영흥(榮興)이며, 어머니 숙부인(淑夫人) 완산이씨(完山李氏)는 이천백(李千白)의 따님인데 홍문관 제학은 순조(純祖) 신묘년 四월 三十일에 출생하였다.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섬겨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맛있는 음식 봉양을 하기에 힘을 썼으며 세 형과 동생 하나가 있는데 매우 우애가 돈독하였다. 아버지가 아프시자 날마다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대접했으며 꿈에 신약(神藥)을 얻어 효험을 보기도 하였다. 고종 병인년에 양요(洋擾)가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일으킨 사적이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에 실려 있다. 고종 무인년(一八七八) 九월 七일에 돌아가셨는데 묘소는 광양군 진월면 망덕산(望德山) 부도등(孚屠嶝) 해좌(亥坐)인데, 옥천인(玉川人) 조장섭(趙章燮)이 행장을 짓고 상서(尚書) 김종한(金宗漢)이 묘갈명을 지었다. 정부인(貞夫人)은 헌종(憲宗) 병신년 十一월 二十六일에 출생하셨는데, 평소 부덕(婦德)을 갖추시어 시아버지에게 효성을 다하고 공(公)을 예의로써 받들었다. 남편의 병이 위독해져 고치기 어렵게 되자 하늘에 대신 죽기를 빌었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었으나 마침내 구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곧바로 따라서 죽기를 맹세하고는 약을 마시기도 하고 목을 매기도 했으나 모두 집안사람에게 발각되어 죽으려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기를 「남편을 따라서 죽는 것도 좋지만 남아 있는 아들을 잘 길러 남편의 뒤를 잇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고는 이에 아들을 의리로 가르치고 항상 주경야독(晝耕夜讀)에 힘쓰기를 신신 당부하였다. 동서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네 것 내 것이 없이 나누어 써서 집안에 틈이 나는 일이 없었으며,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어 칭송이 자자하여 고을에서 여러 차례 추천하여 여러 차례 포상(褒賞)을 받기도 하였다. 고종(高宗) 계묘년 四월 三十일에 돌아가셨는데, 그 둘째아들 동혁(東爀)이 좋은 땅에 무덤을 쓰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땅을 가려 몸소 흙을 져다가 열여섯 번이나 이장(移葬)을 하다가 마침내 길지(吉地)를 구해 안장(安葬)하게 되었으니, 묘는 합봉(合封)이다. 아들 둘은 동섭(東燮)과 동혁(東爀)이요, 손자 정훈(定勳) 병훈(秉勳) 길훈(佶勳) 광훈(侊勳) 방훈(昉勳)은 큰아들 소생이요, 경훈(炅勳) 창훈(昌勳) 충훈(忠勳) 명훈(明勳) 상훈(尚勳)은 작은아들 소생이다. 증손 태익(泰翼)은 정훈의 소생이요, 치익(治翼)은 병훈의 소생이요, 재익(宰翼)과 종익(鍾翼)은 길훈의 소생이요, 윤익(閏翼) 경익(庚翼) 하익(河翼)은 광훈의 소생이요, 관익(官翼) 화익(和翼)은 경훈의 소생이요, 환익(桓翼) 해익(海翼)은 창훈의 소생이요, 내익(來翼) 광익(桄翼) 수익(洙翼)은 충훈의 소생이요, 백익(栢翼)은 명훈의 소생이요, 순익(楯翼) 승익(昇翼)은 상훈의 소생이며,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못한다. 아, 부인은 부드럽고 현명한 성품과 깨끗한 절조로 따라서 죽으려는 마음을 돌려 아들을 가르쳐 집안을 창성하게 일으켰으니 어찌 하늘의 밝으신 이치가 없겠는가. 이런 사실은 역사책에 써서 후세의 부인들에게 모범을 삼게 해야 마땅하다. 다음과 같이 명한다. 저 남쪽을 바라보니 큼직한 무덤 하나 있네 載瞻南維 有封若堂 산기슭에 상서로운 기운 감도니 어진 부인의 묘소네 嶽瀆凝祥 賢媛壽藏 하늘에 빌고 손가락 잘랐으니 그 정성 훌륭하였네 祝壇斫指 若哉其誠 위태로움을 돌려 안정시켜 집안을 번창하게 하시고 扶危轉安 夫家復昌 자손이 잘 계승한 것은 의리로써 가르친 보람이네 子孫善繼 遷敎以方 아름다운 사적 비석에 새겨 영원히 밝히네 顯刻懿蹟 昭視無疆 丁丑年 流頭節에 嘉善大夫 原任奎章閣提學 延安 李炳觀 지음 아들 東爀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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